이비인후과 의원을 찾았던 건 작년 8, 아버지의 귀가 아파서였다. 의사 샘은 내시경으로 아버지 귀를 잠깐 들여다보고는 진료 의자 뒤로 돌아가 양쪽 턱관절을 만지며 아프지 않은지.’ 물었다. 귀의 통증은 턱관절이 원인이라고 했다.

 

난청도 있으신 거 같은데, 청력검사 해보시는 거 어때요?”

 

맞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난청으로 고생을 하셨다. 보청기를 하자고 말씀드렸더니, 퇴직하면 그때 가서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요즘 들어 상대방의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 걱정이었는데, 아버지도 답답했는지 순순히 청력검사를 받으셨다.

 

난청이 심하네요. 보청기를 착용하시는 게 좋은데…, 이 정도면 장애등급이 나와서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거든요. 예전엔 의원급에서도 서류 발급이 가능했는데, 국가지원금이 늘어나면서 절차가 까다로워졌어요. 눈먼 돈이라 생각하고 서로 타 먹으려고 마구잡이로 신청해서 문제가 생겼죠. …, 등급 받으시려면 2차 병원으로 가셔야 하는데, 어떻게…, 소견서 써드릴까요?”

 

의사 샘은 편의성과 경제적인 면을 고려할 때, 청주의료원이 좋다고 추천했다. 아버지 의향을 물으니 좋다고 했다. 최근 귀가 점점 어두워져 대할 때 힘들다고 하셨다. 처방전과 소견서를 받아 이비인후과를 나왔다. 1층 약국에서 약을 사고 네비에 청주의료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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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로비의 붐비는 사람들을 보고 진료받기까지 시간이 걸리겠다 싶었다. 그런데 접수를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더니 여기는 한산하다. 이비인후과 앞 대기 환자 명단도 비어있다. 다행이다. 진료실 앞 작은 스테이션의 간호사 샘에게 방문 목적을 이야기했다. 오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내게 반으로 접힌 B5용지를 건네며 청력 검사를 먼저 받고 오라고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하루 두 번 청력 검사를 받았다.

 

머리 곳곳에 흰머리가 내려 앉았지만, 의사 샘은 꽤 젊어 보였다. 진료 의자에 아버지를 앉히고 내시경으로 귀를 들여다보고는, 아버지와 내게 장애등급 받으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는지 설명해줬다. 최근 6개월 내에 난청 치료 이력이 없기 때문에, 3개월 후에 다시 서너 번의 청력검사를 받아야 하고 마지막에는 뇌파검사를 받는다고 했다. “검사 대충 받으면 등급 안 나올 수 있거든요? 열심히 받으셔야 해요.” 의사 샘은 눈을 빛내며 몇 번이고 강조했다.

 

여름과 가을 두 계절이 흘러가고 찬 바람에 눈발이 섞여 춤을 추던 12, 아버지의 청력검사가 재개되었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친구들이 그르는데, 다 안 들린다고 혀야 등급이 잘 나온댜.” 아버지의 말씀이 마음에 걸렸지만, 처음 받는 것도 아니고 이미 두 번이나 받아봤으니 별일 있겠나 싶었다.

 

청력 검사지를 들여다보며 계산기를 두드린 의사 샘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번보다 청력이 더 안 좋아지셨네요. 그런데 마지막에 뇌파검사를 받는데, 그 결과하고 차이가 많이 나면 등급이 안 나올 수 있어요. 검사 열심히 받으셔야 해요.”

 

아차!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야기구나!’ 아니나 다를까, 진료실을 나와 다음 검사 예약을 잡는데, 간호사 샘이 슬쩍 말을 붙였다.

 

무조건 안 들린다고 그러시면 안 돼요. 나중에 뇌파검사하고 차이가 많이 나면 장애등급 안 나오거든요. 과장님이 검사 열심히 받으시라.’고 하시는 말씀이 그 뜻이예요.”

. 알겠습니다. 아버지한테 잘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차 안, 오늘 들은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그려? 알었어. 담부턴 그렇게 할게.” 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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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초 모든 검사를 끝내고 결과지를 받아 읍사무소에 제출했다.

2주 뒤, 국민연금공단에서 등기우편이 왔다. 자료보완 통지였다.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정확한 장애 상태가 확인되지 않아 자료 보완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기존에 검사를 받은 청주의료원 외에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있는 다른 병원에서 순음청력검사, 청성뇌간반응검사를 시행하고 진료기록지를 첨부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어디로 가야하나. 구글링을 해서 병원을 검색했다. 꽤 규모가 있는 프랜차이즈 이비인후과가 있어 전화를 걸어 검사가 가능한지 문의했다. 직원은 저희 병원은 의원급인데, 여기서 해도 괜찮다고 하나요?”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우편에 적힌 국민연금공단 증평지사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이야기를 한참 듣고는 자기가 담당이 아니라서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담당 직원이 아이가 아파서 휴가 중인데, 자기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잠시 후 휴가 중인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가 마음을 두드렸다. 명확하고 세세한 설명에 눈이 트였다. 휴가 중에 일 문제로 전화를 받으면 짜증부터 치솟기 마련이다. 미안하고 감사했다. “고맙습니다.” 내 마음이 말에 담겨 온전히 전해졌으면 좋겠다.

 

이비인후과 병원 예약을 하고 검사를 받았다. 두 가지 검사를 해야 하는데, 하나만 하더니 내려가라고 했다. ‘무슨 일이지?’ 대기실에서 잠깐 기다리다 진료실로 들어섰다. 의사 샘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 장애등급 판정 기준이 60데시벨인데요, 아버님 청력이 거기에 애매하게 걸쳐 있어서 이럴 경우에는 장애등급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굳이 비싼 뇌파 검사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내려오시라고 했어요. 장애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청기는 하시는 게 좋아요. 일상생활에서 많이 불편하셨을 거예요. …, 보청기는 휴대폰처럼 일종의 전자기기니까, 여기저기 둘러보시고 아버님과 가장 맞는 제품으로 선택하세요. 저희 병원에서도 보청기를 판매하거든요. 원하시면 상담 예약 잡아드릴게요.”

 

괜찮다.’고 하고 일어섰다. “안 되것 댜?” 아버지의 얼굴에 실망감이 서렸다.

 

애매하대요. 제가 딴 병원 예약해볼게요. 한 군데 더 가봐요.”

그려. 알었다.”

 

다른 병원을 찾은 날, 아침부터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주차장에서 병원까지 거리가 멀어 우산 한 개를 같이 쓰고 천천히 도로를 걸었다. 접수를 하고 자리에 앉자 아버지는 긴장이 되는 듯했다. 목이 타는지 정수기 쪽으로 갔다가, “코로나 때문에 여기는 정수기도 안 쓴댜.” 헛걸음을 하고 아쉬워하셨다.

 

갈증 많이 나세요? 물 사다 드릴까요?”

아녀. 괜찮어. 인자 곧 이름 부를 거 같어. 지달려야지.”

 

아버지가 검사를 받는 동안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500ml 생수 2통을 샀다. 검사를 끝내고 나오는 아버지께 생수를 건넸다. “고생하셨어요.” 아버지는 한 통을 순식간에 비우고 손가락 하나를 폈다. 하나 더 달라는 의미다.

 

…, 검사 결과 보니까 등급 나오실 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보호자만 들어가도 된다고 해서 혼자 들어갔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 짧은 문장이 다였다.

뭐랴?” 대기실 의자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일어섰다. 초조한 마음이 목소리에 묻어났다.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몇 주 뒤, 결과통지가 등기우편으로 왔다. 아버지는 심하지 않은 장애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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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 고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관심이 없을 때는 몰랐는데, 보청기 전문점이 생각보다 꽤 많았다. 아버지와 몇 군데를 돌며 청각 검사를 하고 청음을 했다. 국가 지원금을 받는 보청기 브랜드와 모델이 리스트로 나와 있어서 가격으로 씨름할 일은 없었다.

 

선택의 기준은 딱 두 가지였다. 기기가 아버지 마음에 들어야 했고, 피팅과 수리를 위해서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 좋았다. 청주와 충주의 보청기 매장을 방문하고 여기가 좋겠다.’고 선택한 건, “혹시 보청기가 고장 나면 수리 기간 동안에는 어떻게 하나요?”란 물음에, “두 개가 동시에 고장 나는 일은 드문데요, 그런 일이 생기면 수리 기간 동안 보청기를 대여해 드려요. 보청기를 착용하다가 빼면 무척 불편해하시거든요.”라는 말이 마음에 꽂혀서였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고막형 보청기라 배터리가 빨리 닳는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 가족의 만족도는 높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와 대화할 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고, 밥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아버지가 말을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조곤조곤 이야기해도 된다.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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