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비가 내린다 싶더니, 추위가 찾아왔다. 찬바람에 눈발이 간간이 섞여 날리는 퇴근길이었다. 지하철 역 계단을 내려가며 휴대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 세 통, 문자가 두 개 날아와 있었다. 친구 동생이다.
[ 오빠! 나 오빠네 회사 앞! ]
이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대책 없다. 전화를 걸었다.
“오빠아!”
“어쩐 일로 여기까지 왔어?”
“아! 왜! 나는 여기 오면 안 돼?”
“되지. 근데 여기까지 행차하셔서 나한테 연락하신 연유가 무어냐고.”
“오빠 어디에요?”
말을 돌린다. 이럴 녀석이 아닌데...... 이상하다 싶다.
“너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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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검은 코트 위에 회색 목도리를 헐겁게 감은 꼬맹이가 눈에 들어왔다. 성큼 다가서자 씨익 웃다가 갑자기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
“뭐야. 뭔 일로 여기까지 온 거야?”
외투를 벗어 옆 자리에 놓고 자리에 앉았다.
“오라버니~”
순간 긴장감이 몸을 휘돌았다. 이 녀석이 나를 이렇게 부는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 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그랬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학원 앞에서 연극 포스터 붙이는 작은 오빠를 변태로 오인해 돌멩이로 머리를 찍었을 때도, 내일 출장 가는 큰 오빠 발가락 사이에 돌돌 말은 화장지를 끼워 넣고 불을 붙여 오백 원짜리 만한 물집이 잡히게 했을 때도, 모태 솔로이던 작은 오빠에게 28년 만에 생긴 여자 친구가 선물한 향수를 향초 만든다고 쏟아 부었을 때도 그랬다. 늘 내게 연락을 해서 엉뚱한 사람을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만들었다.
아들만 있는 집의 막내딸이라 오빠들이랑 놀며 자라다보니 행동이 다소 과격한 면이 있는 건 그럴 수 있다 쳐도, 말투조차 제 오빠를 그대로 빼닮아서 대한민국 비속어계의 지평을 한껏 넓히는데 일조를 하고 있어 가급적이면 같이 있는 자리를 피하는 편이다.
물론 예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 친구가 끔찍이 아끼는 막냇동생이며 군 복무중 휴가 나가 친구네 들렀을 때, 고사리 같은 손을 꼭 붙이며 “오빠, 나 금방 아멘하고 올게. 어디가면 안 돼. 아라찌?”라고 말하던 귀여운 얼굴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오라버니~”
“왜?”
“나 예뻐?”
“그럼!”
“근데 여자답지는 않지?”
“음... 대체로 그런 편이지?”
삐죽이는 입술, 씰룩 거리는 코,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근데 그건 왜 물어?”
“경욱이 알지?”
“응.”
“내가 걔한테 좋아한다고 했거든. 근데 내가 싫대.”
“뭐? 그 자식이 그래? 미친 거 아냐?”
“그치? 망할 새끼! 눈이 뼜지. 나 같은 여자를 몰라보고.”
곧 눈물을 뚝뚝 떨굴 듯하더니 용케도 참는다.
“내가 괜찮은 놈 소개해 줄게. 그런 놈 신경 쓰지 마. 그냥 잊어.”
“진짜?”
금세 배시시 웃는다.
어? 울다가 웃으면 어딘가에 곤란한 일이 일어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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