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사고로 선수생활을 접었지만, K는 대학 입학 때만해도 제2의 선동열을 꿈꾸는 촉망받는 미래의 스타였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부상과 지루한 재활에 지친 그는 대학 3학년, 스물두 살이 되던 해 결국 운동을 그만두고 말았다.
운동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였는데,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이 그렇듯 책과 담을 쌓고 오로지 운동만 파고든 시간이 길어 이야기를 하다보면 종종 허당끼가 튀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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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으러 순대국밥 집에 들어섰다. 벽에 이중섭의 황소가 그려져 있는 달력이 걸려 있었다.
“형. 뭘 그렇게 봐요?”
“달력. 이중섭의 황소를 여기서 이렇게 보니 새롭네.”
“이중섭? 그게 누구에요?”
같이 온 마이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 무식한 새끼. 너 이중섭도 모르냐?”
“아! 이중섭 모르면 무식한 거에요?”
K는 뭔가 억울한 듯했다. 휴대폰을 꺼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이중섭 아냐?”
전화를 끊고는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거봐! 내 친구도 모른다잖아요!”
“그 친구가 뭐라는데?”
“‘내 친구 중에 그런 사람 없는데?’라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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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요즘 차에 관심이 많다.
차를 사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차는 가격이 너무 비싸고 가격이 괜찮으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 문제다. 차를 사는 것의 어려움을 한참 이야기 하다 내게 물었다.
“형! 형 차가 뭘 때지? 등유인가?”
하아! 세상에……, 보일러도 아니고 차에 등유를 넣겠니?
“어. 엔진이 귀뚜라미거든.”
내 대답을 듣고 키득거리던 마이크가 웃음 가득 섞인 목소리로 말을 보탰다.
“너 그거였냐? 두 번 탄다는 그거? 난 경동 나비엔이야.”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K가 볼멘소리를 내 뱉었다.
“아, 왜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그래요! 나도 알아! 거꾸로 타는 보일러!”
“술이나 마셔라.”
2차로 들어온 골뱅이 집. 소면은 아직 섞지도 않았는데 술병은 어느새 세 병이 나란히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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