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남. 오늘 몇 시에 끝나는가?”
“글쎄요. 시간이 좀 걸리지 싶은데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누나가 술 한잔 먹자해서.”
“하하. 그럼 매형은요?”
“나? 나야 당연히 처남이 보고 싶지~이!”
매형과 누나는 봉제 공장을 한다. 직원 퇴근 시각은 오후 8시 30분. 직원들 퇴근하면 매형과 누나는 남아서 다음 날 일할 준비를 한다. 경기를 타는 일인지라 일이 많을 땐 자정까지 두 분이 남아 일을 하기도 하고, 일이 없을 땐 직원들 일찍 퇴근 시키고 술판을 벌이기도 한다.
버스에서 내려 공장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접어들었다. 공장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드르륵~” 매형과 누나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공업용 미싱 박음질 소리가 나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어~ 처남 왔는가.”
“왔어? 배고프지? 녹차 타줄까?”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두 분은 오늘 일 마무리와 다음 날 일할 준비로 바쁘다.
“한참 걸려요?”
“아냐. 금방 끝나.”
“뭐가 금방 끝나! 좀 걸려.”
매형과 누나의 말이 다르다. 이럴땐 내 바람과 다른 쪽이 정답이다.
빗자루를 들고 공장 곳곳을 쓸었다. 재단을 하고 남은 천 조각들, 다 쓰고 몸통만 덩그러니 남은 실패, 머리카락처럼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실 자투리를 담아 커다란 마대 자루에 담는데 이것도 일이라고 더위가 확 치밀어 오른다. 외투를 벗어 한 쪽에 내려놓자 매형이 픽 웃었다.
“우리~이~ 처남이~ 더운가 보네에~.”
“하하하. 제가 힘이 팍팍 넘쳐요. 이제 뭘 도와드릴까요.”
“야! 이리와. 이것 좀 눌러.”
한참 미싱 돌리느라 바쁘던 누나가 소리를 빽 질렀다.
스팀 다리미로 옷감을 누르는 일이다. 꾹꾹 눌러 끝냈다. 이거야 쉽지.
--- ** --- ** ---
“뭐 먹을래?”
“전 아무거나 다 좋아요.”
“안 먹는 거 천지인 녀석이 뭔 소리야.”
“그럼 족발이요! 요즘 족발이 땡겼지요.”
“족발? 좋오치!”
천천히 걸어 도착한 족발집은 예전보다 사람이 없었다. 자리를 잡자 사장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어떡하지? 다 나가고 지금은 미니족 밖에 없는데.”
“어쩔 수 없지. 그럼 그거라도 주씨오. 대신 양은 많이. 사장님 알지?”
“알지!”
아가씨가 밑반찬을 세팅하고 곧이어 사장이 족발을 들고 나왔다.
“사장님.”
“네?”
“못 보던 아가씨네? 이제 알바 안 쓴다며.”
“아. 우리 딸 친구. 족발집 하겠다고 배우러 왔어.”
“젊은 아가씨가 대단하네!”
매형은 조카들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우리 딸들은 술이나 처먹고 놀러 다닐 줄이나 알지…….”
누나가 눈치를 주자 매형이 발끈했다.
“왜? 내가 틀렸는가?”
--- ** --- ** ---
가게가 파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손님들은 하나 둘씩 빠져나가 우리만 남았다.
매형은 벨을 누르기도 전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는 아가씨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방글방글 웃으며 친절하게 써빙을 하는 아가씨 덕분에 우리도 즐겁게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저기. 아가씨.”
“네?”
“몇 살이요?”
“스물일곱이요.”
“하! 우리 딸하고 동갑이네. 오늘 덕분에 술 잘 먹었어요.”
매형이 만 원 한 장을 손에 쥐어주었다.
“괜찮습니다.”
“아니야. 우리가 고마워서 그래.”
“감사합니다.”
“집이 여기요?”
“아니오. 고향은 충주고요, 지금은 왕십리에 있어요.”
어? 고향 사람이다.
“충주요? 제가 거기서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충고.”
“어머! 우리 큰오빠도 충고 나왔는데. XX회요.”
“그래요? 나랑 동창이네. 나도 XX회에요.”
“와! 여기서 우리 큰오빠 동창을 만나다니!”
방글거리며 웃던 아가씨 얼굴에 놀라움과 신기함이 번졌다.
아마 내 얼굴도 같은 표정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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