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티셔츠, 속옷, 양말, 몇 가지의 약, 휴대폰 충전기……, 자기 전 가방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렇게 챙겨 놓으면 아침에 씻고 가방만 들고 나서면 된다. 아침에 잠이 덜 깬 상태로 가방을 꾸리다보면 꼭 빠뜨리는 것이 나오기 때문에 전날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타향살이 10여년, 부모님은 귀향을 결심하셨다. 작년부터 집을 조금씩 고쳤는데, 올해는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오늘은 화장실과 부엌 타일 시공이 있다. 부모님은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 하시지만, 어찌 그럴 수 있나. 서울서 먼 거리도 아니고 아버지 어머니 고생하시는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휴일이랍시고 집에서 뒹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른 아침임에도 터미널은 반팔에 얇은 옷을 입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로 붐볐다. 여름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표를 끊고 첫차에 몸을 실었다. 날은 환히 밝았고 곧 잠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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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을 큰 것으로 선택해서 그런지 일의 진척 속도는 빨랐다.
사람들이 화장실 타일 공사를 하는 동안 아버지와 석고보드로 부엌 마감을 했는데, 그 일이 끝났을 땐, 화장실과 현관 시공이 끝난 후였다.
인건비 때문에 살짝 짜증이 났다.
일을 맡길 땐, 점심·새참 포함 평당 3만원 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밥 때가 되었는데 밥 먹으러 갈 생각을 안 한다. "막걸리 사오려고 그러는데 근처에 가게가 어디 있냐."라는 얕은 수를 쓰기도 하고. 점심을 사주고 참때는 막걸리와 데친 두부, 김치를 대접했다. 그런데 일이 끝나고 정산하는데 인건비가 뛰었다. 평당 35,000원. 사람을 연결해준 아버지 친구는 전화 통화가 안 되다 나중에 엉뚱한 소리를 해서 사람을 기함하게 만들었다.
“내 체면을 생각해서 그렇게 해줘.”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타일과 화장실 물품(변기, 세면대, 샤워기 등등)을 아버지 친구 분의 가게에서 주문하고 시공까지 맡겼다. 그리고 사항 하나하나를 일일이 확인 했다. 인건비는 어떻게 하는지, 점심이나 참은 어떻게 하는지, 노임은 그날 바로 주는지 아니면 나중에 한꺼번에 정산하는지. 두 번 세 번 확인 했는데, 공사 당일에 와서 이런 소리가 나오니 황당했다.
인건비는 32,000원으로 합의했다.
사람들을 보내고 어질러진 집 곳곳을 치운 뒤 씽크대를 보러 갔다. 위염이 다시 도졌는지 속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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