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잔만 더 하자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집까지 두 정거장을 앞두고 버스에서 내렸다. 술도 깰 겸 운동 삼아 천천히 걸어갈 생각이다. 가로수와 가로등이 번갈아 늘어선 길을 천천히 걷는데 얼마 전 친구에게 부탁 받은 일이 생각났다. 메일을 보냈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어서 전화를 걸었다. 바람에서 여름 냄새가 났다.

 

찬샘! 어디셔!”

집에 가는 중. 메일 받았어?”

. 받았지. 고맙다고 연락한다는 걸 깜빡했네.”

그럼 됐어. 난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어서, 혹시 확인 못했나 했지.”

아니야. 고마워. 잠깐만 기다려봐.”

 

주위가 꽤 시끄럽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술에 취한 낯선 목소리가 대뜸 시비조로 말을 붙였다.

 

뭐하냐?”

?”

지금 뭐하냐고.”

누구신지...”

? ... ...”

! 현도령이야? 미안ㅎ...”

 

미처 미안하다는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전화기가 친구에게 넘어갔고 친구는 뭐가 재미있는지 한참을 키득거렸다.

 

[ ! 깜짝 놀랐잖아. 내가 어떻게 현도령 목소리를 모를까. ]

 

카톡을 날린지 1분도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서운하다. 시방 내 목소리도 몰라본 거 잖어.”

그려. 미안혀.”

어디냐?”

집에 들어가는 중이야.”

이리 와라. 여기 영등포 구청이야.”

 

녀석은 언제나처럼 거침없다.

 

오늘은 좀 곤란한데. 술도 한 잔 했고 피곤하기도 하고.”

술은 우리도 먹었어. 내 목소리 잊은 게 미안하면 바로 택시타야지. 안 그래?”

 

여전하구나.

06년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가 한참 진행될 무렵,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다 뜬금없이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을 뽑은 적이 있다. 마이크의 영어실력, 카사의 바람기, 김여사의 주사……. 그중에서 현도령에 관한 것은 막무가내. 호탕하고 남자다운 면은 좋지만 한 번 꽂히면 앞뒤 재지 않고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그 성격. 은근 뒤끝도 있어서 아주 피곤하다.

 

네가 내 목소리를 몰라봤어. 미안해, 안 미안해.”

미안하지.”

그럼 건너오라고! 아직도 택시 안탔냐?”

알았다. 간다, !! 이놈아!”

 

 

--- ** --- ** ---

 

 

택시에서 내리자 손에 커피 하나씩 들고 공원 앞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길을 건너왔다.

 

! 오랜만이다!”

 

금요일 밤, 사람들이 꽤 많이 오가는 거리 한 복판에서 우리는 깊은 포옹을 했다. 녀석에게서 술 냄새가 확 풍겼고 사람들이 슬금슬금 우리를 비켜갔다.

 

여기는 현도령의 홈그라운드. 녀석의 인솔 하에 맛집 골목으로 들어섰다.

 

뭐 먹을래?”

여긴 다 맛집이라며. 아무데나 가자.”

이놈이 회를 안 먹잖아. 충청도 산골짜기 놈이라 해산물이랑 백만 광년쯤 떨어져 있을 걸? 너 문어는 먹냐?”

먹지. 연체동물이나 갑각류는 먹어.”

됐다. 그럼 그리 가자.”

 

친구들은 미리 식당을 꼽아본 듯했다. 횟집에 자리를 잡고 문어를 시켰다.

 

회사일은 잘 해결됐어?”

에효. 골 아프다. 그게 말이지…….”

 

답답한 이야기가 한숨에 섞여 흘러나왔고, 우린 소주잔을 넘기는 만큼 시름이 덜어지는 양, 연신 잔을 부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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