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구아바 형의 첫 직장은 출판사 편집부였다. 소설가를 지망하던 형은 출판사 편집부 일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는데, 그 믿음은 오래지않아 깨지고 말았다. 열심히 다니던 회사를 석 달 만에 때려 치고 잡은 직장은 학원, 과학 강사. ‘높은 임금에 비해 시간이 자유로워 좋다.’는 생각이었는데, 수업시간에 떠든다며 학생 손바닥을 스무 대나 때리고는 잘렸다. 출근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이후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하며 글을 쓰던 형은 돌연 몽골로 떠났다. 이 결정이 마음 어딘가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노마드 유전자를 일깨운 것 같다. 그곳에서 고생고생하며 배운 언어를 무기로 무역회사 현지 사무소 일과 여행 가이드를 병행하며 생활고를 해결하고 몽골 곳곳을 여행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중견기업의 과장으로,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아가씨의 애인으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항상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얼마 후, 회사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한 번만 더 몽골가면 끝이야.’라는 사귀던 아가씨의 경고를 무시하고 회사를 박차고 나온 형은 다시 몽골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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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카톡이 날아왔다.

 

[ 찬샘아 바쁘냐? ]

[ 뭐 늘 그렇지요. 한국 들어오셨습니까. ]

[ 아니. ]

[ . 10월초에 들어가면 바로 이사해야 한다. 시간 되겠니? 중노동은 아니고 짐 정리 하는 거. ]

[ 알았어요. 근데 미리 이야기 해줘야 시간을 뺄 수 있어요. ]

[ . ]

[ 이사는 어디로 가요? ]

[ 난 몽골에서 몇 년 살아보려고. ]

[ 거처는 마련했고요? ]

[ 한국에선 방을 아주 빼는 거지 뭐. 몽골에선 찾아봐야 한다. ]

 

이삿짐 싸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이 양반 이사할 때 한 번 빼고는 같이 짐을 싸고 날랐다. 짐이 얼마 없어서 힘들지는 않았는데, 내가 갈 때까지 짐을 하나도 싸놓지 않아서 살짝 짜증났었다. 설마 이번에도 그러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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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옥탑방에 도착했을 때, 짐정리는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 이게 뭐야!!”

나도 바빴어. 비자문제로 대사관에 갔다 왔지, 노트북 주문한 거 받으러 용산 갔다 왔지, 몽골 팀(매년 여행 가이드 하는 팀)만났지, 저녁때는 호정이 만났지……. 내가 짐 정리를 안 하려고 그래서 그런 건 아니야.”

 

형은 짐정리를 하나도 못한 이유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에효. 오늘 집에 가긴 글렀다.

 

몽골 가져갈 것, 고향으로 내려 보낼 것, 버릴 것. 하나하나 살펴보며 분류 하다 보니 짐을 싸는 시간이 더뎠다. 게다가 쌓인 먼지를 일일이 붓으로 털거나 티슈로 꼼꼼하게 닦아내며 분류를 하니 일이 수월할리는 더더욱 없었다.

 

자정이 넘어 결국 짐을 싸던 형도 짜증을 냈다.

 

! 내가 대체 뭔 생각으로 이렇게 일을 벌인 거지? 지금껏 했던 이사 중에 제일 힘들다!”

 

망원시장에서 사온 족발에 막걸리를 곁들여 마셨다. 원래는 이사준비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먹으려 했던 것인데, 짐정리는 끝이 보이지 않고 허기가 져서 아쉽지만 포장을 뜯었다.

 

이사 준비는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끝났다. 9시에 예약했던 차는 아침 일찍 취소했고 새로 온 이삿짐 차가 떠났을 때는 오후 네 시 반이 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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