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까르푸의 여자친구가 말간 눈으로 까르푸를 쳐다봤다. 순간 그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평소 부르는 호칭인 ‘자기’가 아니라 ‘오빠’라 부른다거나, 말간 눈으로 빤히 쳐다볼 때는 일이 터졌거나 일이 터지기 직전이라는 의미다.
“또 왜 그러냐. 이번엔 뭔 일이여.”
“나 생리를 안 해.”
아침에 바른 썬 블록이 이제야 펴지는 듯 까르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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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께 말이다, 나는 요즘 연애도 시들허고 이대로 헤어져도 좋지 않을까 했거든? 근데 갑자기 그런 말을 헌다. 우짜믄 좋냐.”
“뭘 어째. 테스터기 사서 테스트해 봐야지. 안 했어?”
“사다가 주니까, 지가 내일 해보겠대서 그러라고 혔어.”
연애를 인터넷으로 배운 까르푸의 사랑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오늘은 죽고 못 사는 ‘내 사랑’이었다가, 다음날은 ‘헤어져야 하나.’ 마음이 시들해졌다.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가, ‘내가 이 사람이랑 헤어지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꾹꾹 화를 누르는 연애를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까르푸의 연애 이야기에 섣불리 맞장구를 치지도 한 사람 편을 들지도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조변석개하는 녀석의 말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다음날, 전화기 너머에서 까르푸는 말을 못 하고 한숨만 쉬었다.
“임신이래. 어쩌면 좋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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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할 때 피임을 안 한다는 말에, 친구들은 모두 걱정했다. 일 터지고 전전긍긍하지 말고 미리 조심하라는 말에,
“머 생기믄 좋고~ 결혼하믄 되는 거지”
까르푸는 세상에 달관한 도인의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러다 이젠 결혼하게 생겼다. 말이 씨가 된 모양이다.
“찬샘아. 넌 그러지 마라.”
“뭘?”
“순간의 쾌락을 위해 안전벨트를 푸는 게 아녀. 내가 겪어 보니까 알겠다.”
이 새끼가……. 지금 누굴 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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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푸의 결혼식은 9월 말, 그의 고향인 전주에서 열린다.
처가에서 ‘우린 가난하니 땡전 한 푼 보태 줄 수 없다.’고 손을 놓아서 예식부터 세간살이, 나아가 예식 날 처가 지인들 모실 버스 대절까지 준비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찬샘아. 차안새마아~”
“그만 좀 불러 이 자식아. 오늘도 마신겨?”
그리고 매일 맥주 두 캔을 까고 내게 전화해서 주정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