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나는 무협과 판타지를 꽤 많이 읽었다. 대여점 시장의 끝물이었는데, 그때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글을 쓰는 친구를 알았고 몇몇은 출간해서 나름 상업적 성공을 거둬 지금껏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그때 읽었던 책 대부분은 기억에서 휘발했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나곤 하는 책이 있어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카디스는 내게 그런 소설이다.

한겨울 귤을 까먹으며 바닥에 엎드려 만화책 보던 시절을, 늦은 밤 만화방에서 라면을 먹으며 무협지 책장을 넘기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책. 새 책은 절판된 지 오래되었고, 중고 책이라도 구할 수 있을까 하여 가끔 북아일랜드북코어같은 인터넷 헌책 검색 사이트를 뒤적이곤 했다. 판매처는 몇 있었지만, 대부분이 대여점용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교보 중고장터에서 소장용 책을 판다는 글을 발견했다. 이사 관계로 소장하던 책을 판매한다는 짤막한 소개 글. 빙고! 주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주말을 보냈다. 개인 판매자이고 이사 문제로 바쁘다면 아마도 책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주일쯤 후, 확인해보니 책의 상태는 여전히 결제 완료’. 판매자에게 문의 글을 남겼다. 잠시 후 판매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책을 장터에 올린 것을 잊고 한 권을 처분했다. 남은 책이라도 원한다면 무료로 보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불감청 고소원. 염치 불고하고 책을 받았다. 책은 서점에서 파는 책보다 깨끗했다.

 

남은 한 권을 어떻게 구하지. 출판사로 전화를 해 볼까? 글을 쓰는 친구에게 거래하는 출판사로 연락해서 구해 달라고 해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사람들은 절판된 책을 어떻게 구하나 싶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알라딘 품절 센터가 뜬다. ‘어딘가에 한 권은 있다.! 얼마나 매력적인 문구인가!


서적 도매상, 시중 대형서점, 출판사 전산 외 보관 재고, 알라딘 중고매장 등 샅샅이 찾아서 구해드립니다.


소개 글이 가슴을 때렸다.

 

책을 받은 건, 그로부터 13일 후. 중간에 취소될까 봐 마음 졸이긴 했지만, 책은 무사히 내 품으로 들어왔고 책 상태도 만족스러웠다. 인터넷 서점은 교보를 주로 이용했는데, 알라딘으로 바꿀 테다. 할인이고 적립금이고 다 필요 없어! 이런 아이디어를 가진 서점이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책을 무료로 보내준 분과 알라딘 덕분에 1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그때 그 감정에 빠져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세상은 이런 좋은 사람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회사가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누군가가 나를 떠올릴 때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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