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 자리 잡은 은 특이한 구조의 술집이었습니다. 들어가서 좌측은 칸막이로 나누어진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여느 평범한 주점과 같았고, 오른쪽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앉는 형태였는데 낮은 천장으로 이루어진 방이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였습니다. 서울 구경하러 갓 상경한 촌놈처럼 우리는 연신 두리번거리며 우와!’를 연발했습니다.

 

술은 뭐 드실래요? 다른 것도 다 괜찮은데 여기는 흑주가 맛있어요.”

그럼 그걸로 시키죠.”

저녁 아직 안 드셨죠? 안주는 쏘야랑 파전 어떠세요?”

좋지요.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뭔들 못 먹겠습니까.”

 

낮은 주광색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고 스피커에서는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컵에 물을 따르며 통성명을 했습니다. 학교 학번 이름…, 대충 어색한 자기소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친구분들이랑 같이 오신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혼자 오실 줄 알았거든요.”

객지 생활하는 사람은 자고로 눈치가 밝아야 배를 곯지 않죠. 딱 보니까 이 녀석이 맛있는 거 혼자 먹으러 가는 것 같더라고요.”

형이 의리 없이 혼자 아리따우신 아가씨를 만나러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따라붙었죠.”

 

저는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오면서 내내 주의를 주긴 했지만, 이 두 양반의 언행은 얌체공 같아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가령 요즘은 아주, 매우의 의미를 담은 신조어 캡과 짱을 적절하게 섞어 써야 신세대 대접을 받는다고 진지하게 조언하는 후배나, PC 통신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첫인사는 하이루. 방가방가.’라고 잊지 말고 먼저 선수 쳐서 통신하고 있음을 넌지시 나타내라고 이야기하는 선배나답이 없습니다.

 

몇 번의 잔이 파도를 탔습니다. 흑주는 꽤 달았습니다. 술술 넘기다 보니 술이 슬슬 올라옵니다.

 

근데 아까 읽고 계시던 책은 뭐에요?”

이거요?”

 

아가씨가 쓱 꺼내 보여준 책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원서였습니다.

후배가 순간 긴장한 얼굴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 역시 영문과!! 영미 소설은 아주 그냥~ 원서로 읽으시는군요!”

읽어 보셨어요?”

조지 오웰은 1984만 읽어 봤어요. 동물농장은 요약본으로 대충 훑은 정도에요.”

난 읽었지. 고등학교 때 영어 샘이 괴팍하신 분이라, 방학 때 보충수업 시간에 읽게 했거든.”

이 책을요?”

. 뭐 고삐리가 알아야 할 필수 단어나 숙어 이런 게 모두 들어 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리고는 지옥의 나날이 시작됐죠.”

 

선배의 장광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끝을 모르는 이야기의 종점을 알고 있으니 어서 노란 머리의 아가씨를 구해야 합니다.

 

끝말잇기나 하죠.”

세 글자 이상. 이름 안 됩니다.”

좋아요! 벌칙은 진실게임인가요?”

대답하기 곤란하면 원샷!”

오케이!”

 

선배는 마치 똥을 싸다 중간에 끊은 듯 떨떠름한 얼굴을 했지만, 분위기는 이미 끝말잇기로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게임은 31(숫자 31을 말하는 사람이 당첨), 업그레이드 007 (총에 맞은 사람이 돌돌돌돌외치고 양옆 사람이 맞아 맞아 맞아박수 치기), 구구단 게임으로 이어졌고 키득대며 웃느라 나중에는 배가 아팠습니다.

 

술집에서 나온 시각은 11시가 훌쩍 넘어서였습니다. 2차를 가고 싶었으나 새 나라의 어린이는 막차가 끊기기 전에 어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양손을 흔들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다음엔 저희 홈그라운드로 오세요. 풀코스로 모시겠습니다.”

알았어요! 기대할게요! 저도 친구들 데려가도 되죠?”

아이고! 불감청 고소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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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멀거니 창밖을 바라보던 후배가 말을 툭 던졌습니다.

 

멋진 것 같아요.”

뭐가?”

한별 누나요.”

그래? 어디가?”

취미가 베스트 극장 잔뜩 다운받아서 울면서 보는 거라잖아요.”

 

!

끄덕끄덕 연신 방아를 찧던 선배의 고개가 차창에 퉁! 부딪쳤습니다.

 

. 여기 기대요.”

 

외투를 둥글게 말아 차창과 선배의 머리 사이에 끼웠습니다.

 

. 고마워.”

 

살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술기운을 날렸습니다.

스쳐 지나는 밝은 가로등 빛이 아가씨 머리색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