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이른바 명문이라 불리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평준화 시행으로 고등학교가 뺑뺑이가 된 지 20년이 넘었는데,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 그런 것 따윈 없었다. ‘올해 서울대를 몇 명을 보내느냐.’ 명문고라는 간판과 자부심이 마치 거기에 있는 양, 선생들의 모든 초점은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나는 어중간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가고 싶은 학과는 비인기 학과여서 매달 나오는 모의고사 배치표에도 늘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 내 딴에는 아쉬운 것 없는 성적이었다. 수능을 보고 점수에 맞춰 대학을 결정하면 되었다. 어느 날 담임이 ‘점수가 서울대와 연고대의 어중간한 선에 걸쳐 있다.’며 ‘키워주겠다.’고 은근슬쩍 촌지를 요구했는데, 눈치 없이 되물었다.
“선생님이 키워줘야 제가 서울대를 갈 수 있나요?”
이후, 조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모의고사 성적이 3점 떨어졌다고 교감에게 불려 가 뺨을 맞았고(석차와 백분율은 오히려 올랐다.), 나와 친하다는 이유로 몇몇 친구가 심화반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쫓겨났다.
심화반은 소위 ‘서울대 반’이었다. 정규 수업 시간 끝나고 ‘서울대 본고사 문제 풀이’를 목표로 만들어진 반인데, 다들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때, 대입 시험이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뀐 지 얼마 안 된 터라 혼란이 많았다. 본고사, 특차, 논술, 면접… 선택지가 다양했고 그만큼 혼란이 일었다. 그 시기 입시 정보를 학교 선생들이 틀어 쥐고 있었는데, 당시 선생들 스스로 입시 전쟁의 최전선에 자신들이 있노라고 으스댔던 시기였기에 심화반에서 떨려난다는 건 우리들에게 꽤 큰 페널티였다.
“앞으로 딱 한 달간 찬샘이랑 말하지 마. 도시락도 같이 먹지 말고, 옆에도 앉지 마. 딱 한 달이야. 길지도 않아.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걔는 투명 인간이야. 알았어? 그렇게 하면 너는 앞으로 무조건 심화반이야. 독서실도 원하는 자리로 배정해줄게.”
담임과 학생주임 그리고 교감의 지속적인 회유와 협박에 몇몇 친구들은 넘어갔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자의반 타의반 심화반에서 떨려났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3층에 있는 독서실에는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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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으로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신발을 신고 방으로 들어와서 서랍장이며 책상이며 마구 헤집어 놓았다. IMF가 닥치기 전, 서민 생활은 벌써 무너져 가고 있었는데, 그 직격탄이 하필이면 우리집이었다. 한번은 수업중인 교실까지 찾아와서 “아부지 잘 계시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고, 몇 명은 점심시간에 찾아와 '신장이 얼마네, 간이 얼마네…' 천연덕스럽게 늘어놓기도 했다.
“3학년 7반. 찬샘, 찬샘 학생은 교무실로 오세요.”
교무실로 내려갔다.
“이리 와.”
담임이 두리번 거리는 나를 보고 손짓을 했다.
자기 책상 옆에 세워 놓고 한참을 뭘 뒤적거리고 찾고 작성하고 그러다 한 시간이 흘렀다.
“너 안 갔냐?”
“선생님이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요.”
“새끼… 이렇게 눈치가 없냐? 병신이야? 이쯤에서 네가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어?”
“네?”
또 시간이 흘렀다.
담임은 한참 책을 보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김 선생! 오늘 시간 괜찮아? 한잔해야지. 아… 그럼. 나야 시간 좋지. 김 선생 그냥 가면 섭하지. 애들은? 공부 잘하지? 뭐 누구 아들인데 못하겠어. 머리도 좋을 거 아냐…….”
전화를 끊은 담임은 다시 책을 뒤적였다.
“저… 선생님.”
“…”
“자퇴하란 말인가요?”
“…”
“저보고 자퇴하라고 그러시는 건가요?”
꽝!
담임이 갑자기 책상을 내리쳤다.
“뭐 이새끼야?”
번쩍! 불똥이 튀었고 안경이 날아갔다. 번쩍! 번쩍번쩍!!
“너 때문에!! 응? 너 같은 새끼 때문에!! 다른 애들이 얼마나 피해를 받는지 알아? 응?”
모교에서 후배를 가르치게 되었다고, 그래서 너희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담임의 느닷없는 손찌검에 정신이 없었다.
“애새끼가 돈이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말대꾸나 하고!! 다른 애들 피해나 주고!”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가운 기운이 머리에서 발까지 몸을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이거였나? 고작, 이거였어?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사자후가 교무실을 울렸고 누군가가 나를 감싸 안았다.
“애가 뭔 잘못을 했다고 때립니까! 설령 잘못했다고 해도 애를 왜 이래 때립니까!!”
옆 반 수학 선생이었다.
터진 입술에서 난 피가 갈색 니트에 묻자 침 흘린 자국처럼 얼룩이 졌다. 아…, 이럼 곤란한데….
--- ** --- ** ---
야자시간, 친구들 사이에서 찻집으로 통용되는 등나무 아래로 나를 불러낸 수학 선생이 담배를 건넸다.
“피라.”
“저 담배 안 피우는데요.”
“괜찮다. 피라. 원래 담배는 어른한테 배우는 기다.”
“그건 술 얘기 아닌가요?”
“뭐? 니 술도 마시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3. 어쩌면 힘들었는지도 모르는 시간이 살처럼 흘렀다.
--- ** --- ** ---
가끔, 학창 시절을 이야기할 때, 하루에 열 대를 맞았네, 스무 대를 맞았네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다. 어떤 이는 스승의 날에 그 선생을 찾아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미안해하기도 한다.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시절의 망각이고 추억의 왜곡이다. 그렇게 때려서는 안 되는 거였고,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그럴듯한 핑계는 모두 그들의 나태와 부정을 덮으려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우리의 빛나는 시간에 존재했던 주변인 중의 하나이기에 덩달아 빛나 보일 뿐이다. 우리의 낭만의 시간에 그들을 무임승차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막 꽃이 피는 나이였고, 그때 우리에게 촌지를 요구하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교사가 있었다.
낭만의 시대였고 꿈의 선생이 있었다고 야만의 교사를 선의로 포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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