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행동이나 말, 분위기…,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날카롭게 후벼진 상처처럼 꽤 오래 각인 되는데, 어떤 건 여전히 마음이 아리고 어떤 건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렇다.
지금껏 연애를 세 번 해보았는데, 감수성이 폭발하던 시기라 그랬는지 기억나는 일이 꽤 있다.
첫사랑은 다소 우울하고 학교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일을 꺼내 “응?”이라는 반응을 나오게 만들게 하곤 했다. 어느 날 학교서 데이트를 하고 나오다, 학관 앞에서 'PC통신 나우누리' 대학생 할인행사 하는 것을 보고 회원 가입을 하러 갔을 때였다. 일반 요금은 11,000원인데, 아카데미 할인이라고 해서 대학생은 7,700원이었다. 아이디를 적는 칸을 채울 때였다.
“nobel. 노벨로 할게. 소설이라는 의미로.”
“소설은 novel 아닌가?”
(머리를 팍팍 치며) “아!! 맞다!! 맞어!! b가 아니라 v지. 아씨… 난 왜 이러지?”
왜 이리 과격하게 반응하나 했다. 철자 헷갈리는 건 나도 다반사라 이게 그렇게까지 민감한 일인가 했다. 한데, 첫사랑은 한 달 넘게 그 이야길 꺼내며 자기를 무식한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렇지 않다. 나는 한글 맞춤법도 무수히 틀리는데 하물며 영어는 오죽하겠냐.’고 위로를 했지만,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 같았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고 서로 있는 말, 없는 말 다 꺼내 이야기를 하던 어느 날, 나는 첫사랑의 말에서 조금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 늘 ‘동생과 이런저런 놀이를 했다.’고 귀결되고 친구가 없었다.
“어렸을 때 왜 동생하고만 놀았어?”
“응. 난 외톨이였거든.”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턱! 막혔다.
그제야 그녀의 다소 과장되고 과시적인 행동이 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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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말, 두 번째는 군대서 받은 편지였다.
첫사랑과 헤어진 후, 마음이 부유(浮游)할 때 만난 사람인데 어느 날 그 사람이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오늘도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 한 줄에 담긴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발 동동 구르며 근무를 서던 한겨울의 새벽도, 손 호호 불며 상황판 만들던 동원과 컨테이너 박스에서도 추운지 몰랐다.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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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좋은 봄날, 물끄러미 동네 뒷산을 바라보다 어릴 때 기억이 났다. 초등학교 때 소풍은 늘 중턱 어디쯤이었다. ‘가볼까?’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 다람쥐처럼 올라가고 싶었지만, 몇 번 길을 잃고 헤매다 희미해진 등산로를 따라 겨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올라가는 동안 문득 떠오른 생각이 과거의 목소리를 불러왔다.
“나는 외톨이였거든.”
“오늘도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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