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무렵 최대 고민은 ‘누구와 똥패를 맺을 것인가 1’였다. 그때그때 모인 인원에서 적당히 편을 갈라 구슬치기, 딱지치기 따위의 놀이를 했는데, 언젠가부터 하나둘 동패를 맺더니 애초에 편이 갈라졌다. 개인전에서 단체전으로 유행이 바뀌고 있었다.
“너 누구랑 똥패 할 겨?”
“음…, 몰러. 아직 고민중이여.”
오늘도 짝꿍 대황이는 선택을 종용했다.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먹으며 고뇌에 싸인 소크라테스에 빙의한 척 대답을 회피하는데, 반장 화순이가 말을 걸었다.
“찬샘아! 너 누구 좋아해?”
“응?”
뜬금없는 질문에 얼빠졌다.
내 표정이 우스웠던지 킥킥대던 반장이 여자애들 서넛을 불러 모았다. 교탁 뒤에서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쑥덕거리더니 다시 내게 다가왔다.
“나 너 좋아해.”
“뭐?”
여자애들이 까르르 웃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뭐라 말을 하려는 찰나 3교시를 알리는 벨 소리가 울렸다. 아홉 살, 인생 최대 고민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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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과 머리를 맞대고 쑥덕대던 여자애 중 한 명인 현자는 그날 이후, 틈만 나면 ‘화순이가 너 좋아한대.’라며 킥킥거렸다. 어버버 거리다 제대로 대답을 못 한 게 아쉬웠는데, 지속해서 현자가 연심(戀心)에 불을 지른 덕에 ‘나도 고백을 하자!’ 결심이 섰다.
어떻게 내 마음을 전달할 것인가. 방법이 문제였다. 과감하게 상대를 앞에 두고 단도직입으로 말을 던질까, 친구를 통해 슬쩍 언질을 줄까……, 이삼일 고민하다, ‘편지를 쓰자.’ 결정을 내렸다. 공책 맨 뒷장을 뜯었다. 종이가 너무 크다. 반으로 접었다. 혀로 접힌 부분에 침을 바른 후 살살 찢었다. 일자로 정확하게 나뉘었다. 맘에 든다. 연필로 또박또박 고백의 말을 적었다.
쓴 글을 읽으며 내용을 확인했다. 부끄럽다.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었다. 쉬는 시간에 반장 책상 서랍에 쓱 넣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수업 벨이 울리고 다들 자리에 앉았다. 책상 서랍에서 책을 꺼내던 반장이 쪽지를 발견하고 펼쳐 읽었다.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고 심장이 세차게 진자 운동을 가속했다.
“찍! 찍!” 반장이 종이를 찢더니 내게 쿵쾅거리며 다가와 고백이 담긴 종이를 뿌렸다. 종잇조각이 눈처럼 날렸다. 그리고는 쪼르르 달려가 선생님께 일렀다.
“선생님! 찬샘이가요, 이상한 쪽지를 보냈어요…….”
담임 선생님은 씨익 웃고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와!” 아이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너 화순이 좋아한 겨?”
“얼레리 꼴레리~”
“언제부터여?”
누군가 종잇조각을 모아 큰 소리로 읽었다.
“화.순.아. 사.실.은. 나.도. 너. 좋.아.해. 우.리. 오.늘. 학.교. 끝.나.고. 공.마.당.에.서. 만.날.래?”
“하하하하.”
합창과도 같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가혹한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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