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돌씨가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세 번의 이직과 네 번의 사직서 제출 끝에 얼마 전 자기 사무실을 얻었다.
“찬샘씨. 일 새로 하려니 쉽지 않네. 좀 도와줘요.”
사무실은 재래시장 안쪽 깊숙한 곳에 있었다. 보증금 500에 월세 30만 원. 미용실을 하던 자리였는데, 권리금으로 200만 원을 달라고 해서 100만 원으로 깎았다고 했다. “요즘 이런 데 얻기 쉽지 않아.” 그는 꽤 만족한 눈치다.
사무실 집기가 들어왔고 다음 날 인터넷을 설치했다. 리모델링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닥과 벽면이 깔끔한 편이라 미리 할 일이 없어 이사는 어렵지 않았다. 남은 일은 서류작업. 구청을 비롯해 여러 기관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렸다. 볕이 들지 않아 봄이 온 지 꽤 지났는데도 으슬으슬 추웠다. 전기스토브를 켰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맥주 좀 사다 줘요. 마시며 하게.”
“맥주? 어떤 거로 사 올까요?”
“블랑이요.”
반찬가게에서 사 온 전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부족한 자료는 여기저기 전화해서 요청하고 하나하나 끝내다 보니 시장에도 어둠이 내렸다.
“끝났어요?”
“네. 내일 다시 한번 확인만 하면 돼요.”
“찬샘 씨가 한 일인데, 두 번 볼일이 있겠어요?”
불이 꺼진 시장을 빠져나와 순댓국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고마워요. 회사 있을 땐 머리가 빠릿빠릿 돌아갔는데, 나오니 텅 비어 버린 것 같더라고요. 혼자서 하려니 엄두가 나야 말이지.”
펄펄 김이 오르는 순댓국 위로 막걸릿잔을 들어 춘돌씨와 부딪었다.
“이제 성공하실 일만 남았네요. 다 잘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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