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일요일에 시간 되니?"

 

부모님께서 시골 집으로 올라 오신다는 전화를 받았다. 부모님은 광양에서 나는 서울에서 객지 생활을 하는 중이라 지금 시골 집은 비어 있다. 그래서 겨울이면 수도가 얼지 않게 손을 보아야 하고 여름이면 마당과 텃밭에 잡초를 뽑아야 한다.

 

"그럼요. 엄마가 부르면 없는 시간도 나지요."

 

일요일, 동서울 터미널에서 오전 920분 버스를 탔다. 표를 끊고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는 "첫차를 타랬더니……, 으휴~!"라며 한숨을 쉬셨다.

 

 

--- ** --- ** ---

 

 

버스에서 내려 휴대폰을 꺼내드는데 누군가 팔을 툭 쳤다.

 

"!"

"?"

 

아는 얼굴인데, 이름이 선뜻 안 떠오른다. 분명히 하는 사람이다.

 

"넌 어떻게 된 애가 버스타고 오는 내내 쳐다봤는데 눈길 한 번 안주냐!"

"그게……."

 

반말을 해야 하는지, 존대를 해야 하는지 순간 헷갈렸다. 어제 마신 술이 덜 깨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 영생이여. 몰러?"

 

! 내가 그 이름을 어떻게 잊을수가 있나.

국민학교 4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학교가 파하고 당번때문에 남았던 오후의 교실, 어항에서 빠져나온 도롱뇽을 손에 올려놓고 "괜찮아."라며 씨익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알지. 내가 자느라 그랬나봐. ~ 진짜 오랜만이다."

"너만 그려. 딴 애들은 그래도 일 년에 두 세 번은 봐. 많이 바쁜겨?"

 

가랑비가 내리는데 우산을 쓸 생각도 않고 내 손을 잡고 반가워 하는 오래전의 벗. 어쩌면 고향은 나고 자란 동네 그 자체 보다 기억속의 풍경과 그 안의 사람들로 인해 의미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

 

 

아침 일찍 도착하신 부모님이 고향집 일을 모두 처리하셨다. 늦은 놈이 죄인이지. 이모 집에 들러 배추를 싣고 가셔야 한다고 해서 같이 갔다.

 

지난주에 가져갔어야 했는데, 한 주 늦었더니 배추가 벌써 물렀다. 하우스에서 어머니와 나는 배추를 다듬었고, 다듬어진 배추를 아버지가 차 트렁크에 실었다.

 

". 너 얼른 가서 위에 잠바 하나 걸치고 와."

"잠바 입으면 더워요. 그냥 할게요."

"너 그러다 와이샤쓰에 흙물 들어. 엄마 말 들어."

 

안에 들어가서 아버지의 얇은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나왔다. 비로소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 ** --- ** ---

 


점심을 먹는데 이모가 뜬금없이 물으셨다.

 

"만나는 여자는 이뻐?"

"? ~ ."

 

오뎅 국물을 기가막히게 만드는 집 근처 포장마차 아줌마, 회사 사람들, 학원에서 같이 수업 듣는 수강생……. 만나는 여자야 많다.

 

"아이고~ 언니! 말도 하지마. 진작 깨졌어."

 

한숨섞인 말에 이모가 어머니를 혼냈다.

 

"그런 소리 하지 말어! 잘 되다가도 생각없이 던진 말 한 마디에 동티가 나는겨. 이쁘대잖어. 얼굴도 이쁘고 마음도 이쁘니까 얘가 그렇다고 하지."

 

우리 이모 심각하신데?

 

"이모. 전에 선 본 거 말씀하시는 거면, 잘 안됐어요."

"그래? ?"

"자꾸 교회에 같이 가자고해서요."

"언니. 얘가 이래. 생각이 아주 꽉 막힌 노인네여. 교회 다니면 어때. 사람 괜찮고 지들끼리 좋아하면 됐지."

 

이모가 나를 보며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보통……, 종교는 여자가 남자 따라가기 마련이여. 나도 예전에 교회 댕겼는데, 이모부가 절에 댕겨서 지금도 절에 댕기잖어."

 

이모! 그게 언젯적 이야긴데요. ㅠㅠ

 

 

--- ** --- ** ---

 

 

점심을 먹고 이모 염색을 해드리고 집을 나섰다. 시내 버스가 하루에 네 번 다니는 동네, 휴대폰도 잘 안터지는 깊숙한 시골에서 이모는 수퍼를 하신다. 점방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가게.





차가 모퉁이를 돌기 전 뒤를 보니 배웅 나온 이모가 아직 서 계셨다. 오전부터 내린 비가 안개를 만들어 이모가 계신 곳은 부옇게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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