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푸의 아들은 친탁해서 그런지 뼈대가 굵고 또래의 아이들보다 체구가 크다. 잔병치레도 없어서 병원은 예방접종, 건강검진 할 때를 빼고는 가본 적도 없다. 어린 아이의 가장 큰 효도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크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까르푸의 아들은 효자인 셈이다.
까르푸의 아이가 다쳤다. 설을 하루 앞둔 오후, 뜨거운 물이 담긴 커피포트를 쏟았다고 한다. 사고였다. 이제 갓 두 돌 지난 아이가 식탁 위의 커피포트를 손대리라고 생각치 못 했고, 일은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졌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가면서 후회와 자책과 미안함에 까르푸의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의사는 3주 정도 치료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화상의 정도를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후 이틀에 한 번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환부를 소독하고 약을 바른다.
“어디여?”
“집이지. 애는 좀 어뗘?”
“괜찮어. 인자 잘 노네.”
“그나마 다행이여. 아프다고 안 혀?”
“애는 괜찮은디, 마누라가 그렇게 뭐라고 해싸.”
병원에 다녀온 날이면 까르푸는 내게 전화를 해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작년 가을, 그는 이직을 결심했다. 남은 휴가를 모두 썼고, 새로운 회사의 출근일은 다음 달이어서 3주째 온종일 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그런데 역병으로 인해 외출도 못 하고 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복닥거리다 보니 이런저런 갈등이 발생했다. 까르푸의 아내는 스트레스가 쌓이니 소리를 지르고, 천생의 공처가인 그는 말대꾸 한 마디 못하고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내게 전화해서 하소연한다.
“요즘도 소리 지르냐?”
“머, 글치. 어쩔 때는 분노조절 장애가 있나 싶기도 허다.”
“그게 답답해서 그려. 제수씨하고 아들 데리고 우리집에 함 놀러 와.”
“너희 집에? 가믄 맛있는 거 해주냐?”
“말만 혀, 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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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 K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나 발렌타인 있는데, 가져갈까요?”
“뜬금없이 뭔 소리여.”
“형네 집 갈 때요.”
“우리집?”
“마이크 형이 그러던데요? 형이 토요일에 집으로 오라고 했다고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마이크에게 전화했다.
“이번 토요일에 우리집에서 모이냐?”
“어. 왜?”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네가 집에 오라고 했다매. 까르푸가 그러던데?”
매일 밤, 전화기 붙들고 한숨 쉬는 남편을 보다 못한 까르푸의 마나님께서 남편의 서울행을 명하시었다고 한다. 오후 다섯 시 전까지 복귀하라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그게 어딘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많이 모이지 못하기 때문에 초대 인원을 고심해서 선별했지만, 전화했다가 다 까이고 어쩔 수 없이 마이크에게 연락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새에 우리집에서 모임 약속이 잡혔다. 까르푸와 마이크와 K가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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